헐리우드 셀럽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속옷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
이번 포스팅에서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이야기를 하려고 함.
미국의 의류회사인 리미티드 산하에 있는 여성 속옷 브랜드로, 스탠퍼드 대학교 MBA출신이 만든 브랜드 임.
위 사진의 나이든 남성이 로이 레이먼드.
아들과 찍은 사진.
1977년 6월 12일.
아내의 속옷을 사주고 싶은데 왠지 여성 속옷을 사기엔 뻘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교외에 있는 스탠퍼드 쇼핑센터에 처음으로 빅시 가게를 오픈.
첫 해에 50만 달러. 우리돈 약 5억7천만원 이상을 벌었음.
1977년에 50만 달러 화폐가치를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히트를 쳤음을 알 수 있음.
이 후 매장에서의 판매가 아닌 통신 판매를 시작해고
매장을 3개 더 늘렸다.
1982년 빅시 매장을 오픈한지 5년만에
빅토리아 시크릿 더 리미티드 창업자인 렉스 웩스너에게
약 400만 달러에 브랜드를 팔았다.
첫 해 50만 달러를 벌었는데, 사업이 커진 만큼 수익도 늘었으나
(당시 연매출 600만 달러, 매장 6개.)
브랜드 이미지에 비례해보면 넘나 저렴하게 판 이유는
당시 매출의 하락세 & 아마 다른 사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보임.
회사를 매각하고 1년간 사장으로 있다가 1984년 한화 약 9억 6천만원을 투자해
고급 어린이 용품 브랜드 '마이차일즈 데스티니'를 만들었으나 실패.
사업 실패 이 후 우울증을 겪기 시작했고 1993년에 아내와 이혼.
막대한 빚을 지고 파산. 집과 자동차 잃음.
어린이용 책 사업으로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또 실패.
결국 1993년 8월 26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투신 자살.
46세 나이로 사망.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빅시 매각 후 오히려 전보다 더 잘나가게 되고
빅시의 가치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오르게 되자 매각을 후회해서 자살한 것처럼 나옴.
그의 생전 당시 나이 30세.
남자들이 눈치보지 않고 여성 속옷을 구입할 수 있는 매장을 고민하다가
은행과 친지들로부터 한화 9,100만원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는데
인터넷이 없던 그 때에 카탈로그 쇼핑 사업을 함께 시작해 매출을 크게 느릴 수 있었음.
첫 매장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캐하듯 꾸몄는데
어두운 색의 목재를 사용하고
빨간 색 벨벳 소파와 실크 커튼으로 장식.
기존의 반짝반짝 밝은 빛이 나는 기존의 백화점 속옷 매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매장이름도 시크릿이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대 성공.
하지만
매장의 규모는 늘렸으나 남성을 위한 마케팅에 집중하느라
여성이 주요 고객임을 간과해 규모에 비해 실수입은 하락하는 추세였다고 함.
-렉스 웩스너-
지금의 빅시가 있기까지는 나중에 브랜드를 매입한 웩스너 덕분.
레이먼드가 실수한 마케팅을 바로잡아 여성들의 관심을 살 수 있는 마케팅을 시작.
매장 분위기도 밝게 바꿈.
하지만 컨셉은 미국 상류층이 동경하는 영국 분위기를 고수.
1990년대 초에는 매장이 350개로 늘고 연매출은 10억달러가 넘어감.
-1995년 뉴욕 패션쇼-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를 하게 된 이유는
당시 저가 속옷 브랜드가 쏟아져 나오면서 부터.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빅시는 당시 톱모델이었던 타이라 뱅크스를 일빠로 내세워 첫 패션쇼를 하게 됨.
이 패션쇼 덕분인지 미국 란제리 시장의 35% 차지.
2013년 매출 66억 달러. 회사 가치 20억달러 돌파.
빅시가 전세계에서 패션쇼를 연 것은 불과 몇 년전.
미국에서만 패션쇼를 했는데 미국 밖에서 패션쇼를 처음으로 한 것이 2000년 프랑스.
두번째는 2014년 프랑스 파리 였음. 세번째가 같은 해 중국.
빅시의 속옷은 그 종류가 엄청나게 때문에
전 세계에 있는 매장들 중. 모든 종류를 다 가지고 있는 매장은 1도 없음.
찾고 있는 종류의 속옷이 없으면 매장에서도 인터넷으로 구입하라고 함.
32A사이즈부터 40DDD사이즈 까지 다양함.
(한국의 경우 70A~최대로 하면 90F정도?. 측정법은 조금 다를 수 있음.)
란제리가 메인이지만 화장품, 향수, 의류&구두도 판매 함.
향수랑 화장품은 괜찮지만 의류랑 구두는 대리판매 형식이라 질이 떨어짐.
놀라운 점은 빅시의 의류&구두 제품들 중에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이 많다는 것.
OEM 형태로 한국 공장에서 많이 만들어짐.ㅋ
지금은 모르겠으나 어둠의 경로로 제품들이 빠져나와 인터넷 쇼핑으로 많이 판매되었음.
2016년 여름으로 마지막으로 카달로그가 없어짐.
내일 2편으로 이어집니다.
글이 길어질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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